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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9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바른미래당 탈당을 전격 선언했습니다. 지난 19일 정계복귀 선언 후 귀국한지 열흘 만입니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오늘 비통한 마음으로 바른미래당을 떠난다"며 "어제 손학규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을 보면서 바른미래당 재건의 꿈을 접었다"고 밝혔습니다.

안 전 대표는 "저는 제게 주어지고 제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감당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 자신도 알 수 없는 거대한 거친 파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뛰어들고자 한다"며 "설사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그 길이 옳다면 결코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안 전 대표는 손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손 대표는 이를 사실상 거절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의원들은 바로 동반 탈당하지 않고 추가 논의 후 거취를 정할 예정입니다. 한편, 2019년 1월 2일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 재개 의사를 밝혔습니다.

안 전 공동대표는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1년여간 해외에서 그 동안의 제 삶과 6년간의 정치 활동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민들께서 과분한 사랑과 큰 기대를 보내주셨지만 제 부족함으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봉사’라는 제 초심은 변치 않았음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세계는 미래를 향해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바라본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8년 전 저를 불러주셨던 때보다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념에 찌든 기득권 정치세력들이 사생결단하며 싸우는 동안 우리의 미래, 우리의 미래세대들은 계속 착취 당하고 볼모로 잡혀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장차 어떻게 될지 암담합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안 전 공동대표는 “국민이 대한민국의 부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미래를 내다본 전면적인 국가혁신과 사회통합, 그리고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며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국민께서 저를 정치의 길로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셨다면, 이제는 제가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안 전 공동대표는 그동안 많은 분들이 고마운 말씀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돌아가서 어떻게 정치를 바꾸어야할지, 어떻게 대한민국이 미래로 가야하는 지에 대해 상의 드리겠습니다. 외로운 길 일지라도 저를 불러주셨던 국민의 마음을 소중히 되새기면서 가야할 길을 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맙습니다. 안철수 올림“이라고 전했습니다.

프로그래머, 교수, 기업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 안철수는 1962년 2월 26일 출생으로 올해 나이 만 57세 입니다. 순흥 안씨 1파 감찰공파 26세로서 현재 소속정당은 바른미래당 입니다.

 

독일로 떠났던 안철수 대표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엔나 시티 마라톤'대회에서 하프마라톤을 완주해 근황을 알렸습니다. 기록은 1시간 56분 33초라고 합니다.

단국대학교 기초의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학과장 보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의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1년 V3라는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된 백신 프로그램이자 상용 소프트웨어다. 이후 프로그래머로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고,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직에서 물러난뒤 KAIST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작가와 방송인 김제동과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지지를 자산으로 2012년 9월 19일, 정치권에 입문하였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 당대표로써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었으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로 시작된 문재인 대표 체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빚다 결국 탈당하여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했습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로서 20대 총선을 지휘하여 서울 노원구 병에서 당선되고, 의석 38석이라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리베이트 파문으로 당대표 직에서 사퇴했다. 19대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선출되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21.41% 득표로 홍준표 후보에게 밀린 3위로 낙선했습니다.

이후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정치은퇴까지 거론되었으나, 오히려 이런 세간의 예상과 반대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내에서 극심한 반발이 있었으나 강행하였고 이후 당대표로 당선되었습니다. 국민의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는 합당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당내에서 "말바꾸기", "호남에 대한 배신"이라며 강한 반발이 있었고, 결국 분당 사태까지 겪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을 강행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며, 이후 당대표직을 사퇴하여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동시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득표율 19.55%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린 3위로 낙선하였습니다.

이후 독일 뮌헨 근교의 막스 플랑크 혁신과 경쟁 연구소에 초빙 연구원 자격으로 간 연수를 끝마치고,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법, 과학과 기술 프로그램 방문학자로 활동,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언급하면서 다시 기회 살리고 선택을 꿈꾸는 여성을 응원해야 진정한 공정사회이고, 이것이 우리 당이 추구하는 가치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MBC 예능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엄청난 입담과 몰입감으로 방송분량 1시간을 거의 다 채웠으며 그주에 했었던 라디오 스타는 다음주 분량의 예고편만 방영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V3 제작에 대한 유명한 비화를 밝혔는데 1991년 2월 6일, 군의관에 입대하러 가는 당일 새벽에 초기버전 V3 제작을 마치고 떠났다고 합니다. 


존댓말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뿐 아니라 학생, (CEO 시절의) 직원들 등 아랫사람에게도 가리지 않고 존댓말을 쓴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신선한 반응이 많았으나 정치계 입문 이후 인간관계에서 여러 부침을 겪은 이후 대인관계에서 다소 미숙한 부분의 결과라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집 앞에서 택시를 타고 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께서 존댓말을 하며 배웅하셨고, 그걸 본 택시기사가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해 "형수님이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안철수는 이때까지 집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덕에 반말을 잘 못해 해군 장교일 때도 고생했을 정도로 존댓말이 입에 붙었다고 하네요.

도널드 트럼프와 와튼스쿨 동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썰전과 SBS 대선토론에 출연해서 언급했었습니다. MBN 그러나 와튼스쿨이라 하나 캠퍼스가 다르다고 합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 MBA 과정을 거쳤지만, 안철수 대표는 이와 다른 EMBA(Executive MBA), 즉 최고 경영자 과정을 거친 것이며 학업 기간도 일반 MBA보다 짧다고 하네요.

사드 배치 논란에 대해서는 배치 반대 였으나 최근 조건부 찬성으로 선회했습니다. 안희정 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사드 배치 반대였다가 입장이 좀 변한 이유는 합의 하기 전과 합의 이후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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