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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국가. 해양 무역이 상대적으로 활발했을 시기에는 위세가 상당한 국가 중 하나였다.

수도는 리스본(Lisbon). 리스본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2,927,000명이다. 리스본은 영어식 이름이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즈보아(Lisboa)라고 한다. 그 밖에 포르투(Porto), 브라가(Braga), 코임브라(Coimbra), 파루(Faro)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포르투는 일하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브라가는 기도하고, 리스본에서 즐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10,291,000명이다. 비슷한 인구 규모의 유럽 국가는 벨기에, 스웨덴, 그리스, 체코, 헝가리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대한민국의 1/5 정도 된다. 한국으로부터 가장 이동 거리가 긴 유럽 국가들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 거리가 더 멀다. 직항편이 없으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한국 관광객은 주로 스페인과 연계해서 리스본과 주변 지역, 포르투, 몇 개의 관광 도시와 남부 해변 정도를 단기로 찾는 편이지만 유럽 내에서는 이외에도 휴양지인 마데이라 제도,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인 호따 비센치나(Rota Vicentina)가 아주 유명하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제국주의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당시 교황의 중재 아래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서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해양 강대국이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 등이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포르투갈은 상당히 변동이 심한 인구 변화를 보였던 국가다. 1965년 정도까지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하다가 갑자기 인구가 다시 줄어들어서 정체해 있었고 서유럽의 다른 국가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1975년부터 갑자기 인구가 증가했다. 다시 1985년부터는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체했다가 다시 느리게 증가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시 줄어들고 있어서 포르투갈은 심지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변동이 불안정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도 강한 편이고 애향심도 상당히 강하다고 여겨진다.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도 유색 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국가 중 하나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돌아 오지 않거나 못해서 조금 귀해서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자들이 남자 흑인 노예와 결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어 왔고 심지어 귀족 가문의 딸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자유 진영 국가들 중에서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 개시가 가장 늦었던 국가기도 하다.(1980년 3월 7일)[11] 공영 방송사는 RTP이다. 한국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참고로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가 1983년에 시작했다.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해율이 30%대에 불과했을 정도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그리고 소수 언어로 미란다어라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는 천만명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만~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와 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고 2010년~2011년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 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한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다는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 교류를 하면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 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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