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언론사 취재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관에게 가스총을 발사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박 대표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소재 주거지에 취재를 위해 방문한 한 언론사 취재진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날 신변 보호 업무를 하던 경찰관에게 가스총을 발사한 혐의도 있습니다. 이 경찰관은 신체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가스총 발사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 대표는 적법하게 가스총을 소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언론사 취재진 폭행에 대해서는 피해자 조사 등을 진행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통일부는 지난 11일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대북 전단 및 PET(페트)병 살포 행위에 대해 서울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용표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22일 서울경찰청 출입기자단 정례간담회에서 "파주에서 수소가스통도 20통을 압수했다"며 "2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은 1968년 2월 16일 북한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올해 나이 만 52세 입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으로 북한 인권운동가로 알려져 있으며 종교는 개신교 입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인권운동가를 자칭하지만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마저도 '대국민사기극'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 자 입니다.
1968년 2월 16일 북한의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했으나 예비과 과정을 4개월 다니고 학업 성적이 낮아 퇴학 당했습니다. 김일성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지도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합니다. 1998년 탈북하여 1999년에 대한민국에 정착했습니다.
숙부들이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2013년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창의적 반대운동을 위한 바츨라프 하벨상'(Vaclav Havel Prize for Creative Dissent)을 수상하였습니다.
박상학은 2007년 북한민주화운동본부라는 탈북자 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당시 공금유용 문제로 퇴출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보도자료에는 박상학이 "공금유용 등 재정운영을 투명하게 하지 못하고, 얼굴내밀기 식 폭력시위에 치중하고 있다."며 "이사회 만장일치로 사퇴를 결의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렇게 공금 횡령 물의를 빚고 퇴출된 이후 따로 차린 단체가 현재 박상학이 소속되어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입니다.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사단법인으로 등기부등본을 보면, 박상학을 제외하고 7명의 이사가 등재되어 있는데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5명은 자신이 이사로 등재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거나 이사회 한번 개최한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잘 갖춰진 법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개인법인이나 마찬가지인 셈 입니다.
이 단체는 2013년에만 적어도 6400여 만원의 후원금을 모금했으며 단체 홈페이지에는 미국 인권재단에서 2만 달러, 국내 유명 입시학원과 입시학원 대표가 2500만 원, 지난해 안행부 정부지원금 4700만 원을 받은 보수단체 ‘국민행동본부’도 500만 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나와 있습니다. 삐라 10만 장 살포에 들어가는 비용은 300만원 남짓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원금이 모두 삐라 살포에 쓰였는지, 총 후원금은 얼마나 되는지 이사회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기자가 박상학에게 물었지만 거부했습니다.
박상학이 남한에 와서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이 바로 대북전단 소위 삐라라고 부르는 것 입니다. 그와 그의 단체는 지속적인 공개삐라 때문에 접경지 주민 및 진보 단체와 마찰을 일으켰던 바 있습니다. 물론 박상학은 이 진보 단체들을 싸잡아 종북으로 단정지으며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강행했습니다. 이런 삐라 살포 논란으로 인한 대립이 가장 크게 격화된 것이 바로 2014년 10월 25일에 임진각에서 있었던 극우 단체와 파주 시민들 간의 충돌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2주일 전인 2014년 10월 10일, 대북풍선을 향해 북한이 쏜 14.5mm 고사총 사격으로 인해 일부 탄환이 착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날 오전10시경 20개 언론을 대동하고 떠들썩하게 임진각 쪽에서 박상학의 풍선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안 북한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중 연천 태풍전망대 근처에서 조용히 오후3시부터 날리던 이민복 대북풍선단의 풍선을 보고 총격한 것 입니다. 사실 레이더와 열, 소리, 육안으로 안보이는 풍선은 웬만에서 발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꽹과리 친 박상학의 풍선행사에 긴장한 북한이 엉뚱하게 조용히 날리는 풍선에 대고 쏜 것 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가 불안함에도 박상학은 보란듯이 또다시, 풍향도 안 맞는 날인 10월25일 본인의 자유북한운동연합과 최우원의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의 단체는 임진각에서 삐라를 살포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10월 25일 오후 1시경에 총 5만여 장의 대북전단을 날리겠다고 주장하며 대한민국 수호, 종북좌익 척결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 하나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파주 시민들이였습니다. 파주 시민들은 극우 단체들이 진입하기 전부터 트랙터나 차량 등을 동원해 임진각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철벽 마크했고 몇 시간 동안 대치했으며 육탄전을 벌여 삐라를 뺏고 불 태우기까지 했습니다. 똘똘 뭉친 파주 시민들은 식당, 상점조차 그들에게 먹을거리 하나 팔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반나절 가량의 대치 끝에 결과는 파주 시민들의 승리로 끝났고 박상학을 비롯한 극우 단체들은 김포로 옮겨 2만 장의 삐라를 살포했다고 합니다.
2020년 6월 강화군에서도 주민들과 충돌했습니다. 파주와 같은 민통선 인근 지역은 북한으로부터 항상 대남도발과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에 정치 성향이 전통적으로 보수 강세 지역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집안 출신도 많고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 때문에 군인 가족 비율도 높습니다. 그런 지역 주민들이 삐라 살포에 격렬히 반대해오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동시에 이 지역 주민들은 삐라 살포 단체로부터 언론을 통해 종북몰이를 매번 당하기도 했습니다.
박상학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다 북한의 마인드를 가진 채로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것 입니다. 일단 2014년에 이중간첩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당한 전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그가 보인 행태로 볼 때는 이중간첩이라기보다는 남한 사회에 부적응이 주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습니다.
2020년 6월 자신을 취재하러 온 SBS 취재진들을 폭행했습니다. SBS측은 이미 사전에 취재를 안내했고 카메라등에 SBS 로고가 있는 상황이였으나 박상학 측이 얘기를 듣지 않고 여자PD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벽돌을 던지는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폭행을 당한 기자는 총 4명으로 한명은 뇌진탕 증세로 2주 진단을, 두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폭행을 말리는 경찰관을 향해서는 가스총을 분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