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도에서 치사율이 50%에 달하는 공포의 곰팡이균까지 본격적으로 유행할 조짐입니다. 21일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연방정부는 전날 델리고등법원에 19일 기준으로 인도에서 털곰팡이증(또는 모균증, mucormycosis)에 감염된 이의 수는 7천25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AFP통신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와 구자라트주에서만 지금까지 각각 2천건과 1천200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며 털곰팡이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힌두스탄타임스는 자체 집계를 통해 지금까지 219명이 털곰팡이증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흔히 '검은 곰팡이'로 불리는 털곰팡이는 흙이나 썩은 과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에 감염되는 털곰팡이증은 평소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질병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감염자나 음성 판정 후 회복하고 있는 이들이 잇따라 털곰팡이균에 감염되고 있습니다. 의학계는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 염증 방지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환자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털곰팡이균 감염에 노출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최근 현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한 상황을 고려할 때 실제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정부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털곰팡이균에 감염되면 코피를 흘리고 눈 부위가 붓거나 피부가 검게 변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눈, 코 외에 뇌와 폐 등으로도 전이될 수 있으며 치사율은 5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이를 막기 위해 의료진이 안구나 턱뼈 등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도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감염자가 늘어나자 서부 라자스탄주, 구자라트주, 남부 텔랑가나주 등은 털곰팡이균 감염이 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200명의 환자가 보고된 수도 뉴델리에서는 털곰팡이증 환자 치료를 위한 별도 병동도 마련됐습니다.
연방정부도 각 주 정부에 털곰팡이증을 필수 신고 감염병으로 분류하고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털곰팡이증을 앓더라도 8주가량 항곰팡이 정맥 주사를 맞으면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인도에서는 최근 암포테리신-B 같은 항곰팡이 약품 공급이 달리면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습니다. 한편, 인도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이달 초 41만명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20만명대 후반으로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신규 사망자 수는 최근 4천명 안팎에서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BJ 의대·시민병원 이비인후과 병동 소속의 칼페시 파텔 부교수는 ANI통신에 "지난 20일간 67명의 곰팡이균 감염 환자가 확인됐다"며 "하루에 5∼7건씩 이들에 대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특히 심각한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서는 이미 8명의 환자가 곰팡이균 감염으로 인해 사망했고 200여명이 치료 중이라고 PTI통신은 전했습니다. 이밖에 뉴델리, 푸네 등 여러 주요 도시에서도 이같은 환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현지 의학계는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염증 방지를 위해 복용한 스테로이드가 털곰팡이 감염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테로이드가 면역력을 떨어뜨리면서 곰팡이균 감염 가능성을 높였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도 당국은 이 같은 상황을 아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인도 국가경제정책기구인 니티 아요그의 회원인 V K 파울은 7일 "당뇨가 있는 코로나19 환자 사이에서는 곰팡이균 감염이 흔하지만 큰 이슈는 아니라고 장담한다"고 말했습니다.
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항곰팡이 정맥주사가 유일한데, 이는 8주까지 투여를 해야 하며 한 번에 3500루피(약 5만3000원)의 비용이 듭니다. 뭄바이의 당뇨병 전문의 라훌 백시 박사는 "곰팡이균 감염 가능성을 막는 한 가지 방법은 치료 중이거나 회복 중인 코로나19 환자들이 스테로이드의 복용량과 지속시간을 적절하게 투여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800여명의 당뇨성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했지만 아무도 곰팡이균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료진들은 코로나 환자가 퇴원한 후에도 혈당 수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도의 한 고위 정부 관계자는 곰팡이균 감염증과 관련해 "대규모 발병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털곰팡이 감염 사례가 왜 점점 더 늘고 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헤지 박사는 "바이러스의 변종은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며 혈당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치솟게 한다"면서 "이상하게도 곰팡이균 감염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지난달 그가 만난 가장 어린 환자는 당뇨병 기저 질환인 없는 27세의 남성이었다. 그는 "코로나 감염 2주차에 수술을 통해 그의 눈을 제거해야 했다"면서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