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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을 촬영해 공개한 서울 서대문구의원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는 보도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뉴스를 보던 아이들(6살, 4살)이 아빠 왜 저 할아버지한테 골프채로 맞고 있냐며 슬퍼했다네요. 나와 아내가 미처 그 생각을... 에고 뭐라 설명하지ㅠ”

영상엔 전두환씨와 친한 것으로 알려진 골프장 회장 등도 함께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은 촬영하는 임 부대표의 멱살을 잡고 골프채로 찌르는 등 과격한 행동을 했습니다. 해당 장면을 본 임 부대표의 어린 자녀들이 아빠가 골프채로 맞았다며 슬퍼했다고 전했습니다.

임 부대표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신변의 위협을 느꼈냐는 질문에 “골프장 회장으로 알려진 추정되는 인물이 골프채를 휘둘러 폭행을 가했고 동행하고 있던 이순자씨가 방송에서 차마 하기 어려운 상스러운 욕을 고성과 함께 내뱉었다”고 말했습니다.

임 부대표는 또 “전두환씨 본인도 상당히 강하게 반발했다. 아주 강하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또 여러 차례 폭행을 가했다”며 “골프채를 이용해 상당히 강하게 타격을 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임 부대표가 추징금을 왜 납부하지 않느냐고 묻자 “자네가 좀 납부해주라”라고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고 합니다.

또 전 전 대통령은 임 부대표에게 “너 군대 왔냐? 어디 갔다 왔냐?”라며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고(故) 조비오 신부의 '5·18 헬기 사격' 증언을 비판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올해 4월 건강상의 이유로 법원에 불출석허가신청서를 제출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한편 광주지법 등에 따르면 오는 11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전두환씨의 7번째 사자명예훼손 증인신문이 열립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부인 이순자씨와 골프를 치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1030억원 상당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습니다. 체납 세금 30억원입니다.

전두환씨는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출생으로 올해 나이 만 88세입니다. 현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으로 1980년 8월 27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재임하였습니다.

10.26 사태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습니다. 하나회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여 최규하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였습니다. 퇴임 후 1995년 노태우와 함께 구속 기소되었으며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노태우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나, 같은 해 12월에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습니다. 하나회 소속 대한민국의 장성이었으나, 박정희 사후 참모총장을 배제하고 정권 장악 과정이 군사반란있었으나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봉쇄해 시민 학살을 저질렀고, 집권기 동안 권력 유지를 위해 삼청교육대, 땡전뉴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평화의 댐, 수지 김 사건 등 온갖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들을 자행하였습니다.

6.29 선언으로 노태우 등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에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후보들과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다. 이때문에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권하자마자 삼청교육대 등 인권 유린 사건이 줄을 이었고, 사법적 측면에서 볼 때 식민지 시기보다 엄격한 판결 및 국민 통제가 있었고 국민들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체벌 등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사법정의 및 언론 기능은 이 시기 완전 무력화되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은 본인이 군인 출신인 만큼 경제는 김재익 등 전문 관료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보위 시절부터 유명한 경제 관료들에게 개인 과외를 받을 정도로 경제 공부에 열중했으며 당시 경제에 대해 가르쳐 준 인물 중 한 명이 김재익입니다. 과외를 받으며 그의 식견에 감탄한 전두환은 김재익의 정권 참여를 권했습니다. 

전두환의 80년대는 한국의 엘리트화가 진행된 시기로 전두환은 소수의 재벌 및 상위 관료로 나라를 재편한 시기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효적인 재벌 견제와 수많은 중소기업 육성책이 지원되었으나, 소위 엘리트 주의라는 것이 기승을 부리며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고질적인 일류 대학교 학벌 선호 문제도 이 시기에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특권층 사회화 부작용은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시기에 한꺼번에 터져나와, 지존파 사건 등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의당 부대표 임한솔은 1981년 4월 10일 출생으로 올해 나이 만 38세이며, 유성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육군 병장을 만기전역했습니다.


주요경력으로는 제17대 국회의원 노회찬 의원 언론특보, 2006년 민주노동당성균관대학교 학생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의원심상정 원내대표 공보비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대문구의회 구의원 후보, 19대 대통령 선거심상정 후보 부대변인이 있으며, 현재 정의당 서대문구위원회 위원장, 정의당 전국위원, 서대문구의회 구의원, 정의당 부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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