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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4일 방송되는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에서는 ‘춤의 전설’ 현진영을 만난 팝핀현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고 합니다.

이날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집 밖으로 나온 팝핀현준은 막상 갈 곳이 없자 비보이 직속 선배인 현진영에게 연락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고, 팝핀현준에게 인생 조언을 해주던 현진영은 갑자기 “스웨그가 없다”며 그를 자극했습니다.

이에 팝핀현준이 발끈하면서 “지금 춤추면 형보다 낫지”라고 하자 현진영은 어이없어했습니다. 비보이 선후배 간의 자존심 싸움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팝핀현준이 현진영에게 춤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현진영은 자신이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도전을 받아들였고, 그의 소원을 들은 팝핀현준이 깜짝 놀랬다고 해 현진영의 소원은 대체 무엇인지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노래방을 찾아, 현진영의 메가 히트곡들로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마치 시계 바늘을 28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레전드 무대가 펼쳐졌다고 합니다. 인터뷰 도중 현진영은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놓으며 “팝핀현준이 진짜 너무너무 부럽다”라 말했다고 해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집니다.

방송인 현진영의 본명은 허현석이며 1971년 2월 3일 출생으로 올해 나이 만 48세 입니다. 170cm, 혈액형은 A형이며 리라초등학교, 원촌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 1집으로 데뷔하였으며, 현재 소속은 코리아리딩그룹(KL스타엔터테인먼트) 입니다.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네요.

1992년에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히트를 친 대한민국의 힙합 가수로 원래 이태원동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활동하던 한국 비보이 1세대다. 이주노, 박남정 등의 후배뻘이며 당시에 이주노, 박철우, 도건우 등과 상당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댄서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주노, 박남정, 박철우, 현진영이 이태원의 터줏대감격이었으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강원래, 구준엽, 양현석 그리고 박진영 등이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갖추지 못한 엄청난 가창력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5살부터 대한민국 1세대 비보이팀 스파크에서 프로댄서로 춤을 추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비보이 중에 드물게 독자적으로 댄스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댄서였다고 합니다. 박남정 밑에서 백댄서 생활을 한 적도 있으며 이태원의 이주노-양현석 패밀리들을 나중에 자신의 백댄서로 쓰기도 했을 정도로 댄서들 사이에서 신망과 실력을 모두 인정받았습니다.

1988년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장르로는 선구적인 가수로, 1990년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제1집 "New Dance"에서 한국에 바비 브라운 스타일의 힙합음악을 소개했습니다. ‘와와’는 두 명의 백댄서로 1기 멤버는 구준엽, 강원래, 2기는 김성재, 이현도, 3기엔 지누션의 션이 있었습니다.

‘인순이와 리듬터치’, ‘박남정과 친구들’ 등 메인가수와 댄서명을 합친 그룹명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백댄서 개념을 넘어 쇼 프로 출연이나 잡지촬영까지 댄서와 함께하는 등 댄서와 완전히 3인조 그룹처럼 활동하는 방식은 ‘현진영과 와와’가 국내 최초였습니다.

1집의 타이틀곡 '야한 여자'는 당시로서는 노골적인 가사와 힙합이라는 낯선 장르로 인해 여러모로 반향을 일으켰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며 다행히도 후속곡 '슬픈 마네킹'이 큰 인기를 얻으며 주목받았습니다. 국내 댄스가수 중 처음으로 헤드셋형 마이크를 끼고 등장하기에 이르렀으며, 2년 후 서태지와 아이들과 ZAM이 적극 활용해 1990년대 댄스가수들의 주요 아이템으로 고착화시켰습니다.

1992년 제2집 "New Dance 2"를 발표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여기서 타이틀 곡인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로 KBS 가요톱텐에서 5주 1위, MBC 음악방송에서 9주연속 1위를 SBS 음악방송을 8주연속 1위를 하는 등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며 아직도 현진영의 대표적인 노래로 남아있습니다.

그가 무대의상으로 즐겨 입었던 X마크가 새겨진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깔의 후드티와 큼직한 힙합스타일의 청바지는 당시 청소년 및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힙합 패션이라는 장르를 새로이 유행시키며 X세대 문화를 만들어낸 효시로 평가 받습니다. 당시 1990년대의 최종보스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 때문에 빛이 가려지긴 했어도 당시로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이었습니다. 서태지 돌풍 당시 초기는 현진영, 중기는 이현도, 김성재의 힙합 듀오 듀스가 라이벌이었습니다.

1993년에 3집 "Int: World Beat And Hiphop Of New Dance 3"를 발표하여 '두근두근 쿵쿵'이란 곡으로 인기를 이어갈 듯 했으나, 발매 직후 필로폰 투약혐의로 구속되고 이때부터 방송금지되어 긴 시간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게된다. 1991년 이미 대마초 흡입 혐의로 처벌을 받은 바 있었으며 이후에 1994년에도 필로폰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절친한 친구이자 같은 힙합 가수였던 이탁과 IWBH(International World Beat Hip-hop)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Stop aids Stop drug" 앨범을 발표해서 '뻗어봐'로 활동했고 힙합 명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2000년에 현재의 부인인 영화배우 오서운씨를 만나 교제를 시작하면서 오 씨의 설득으로 마약후유증,우울증과 공황장애,인성인격장애 치료를 본격적으로 마음먹게 되고, 2002년 4집 발매와 동시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서 마약후유증밎공황장애관한 공개치료를 선언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순천향대학교병원 정신병동에 스스로 입원하였습니다.

공개치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그동안의 마약에 찌든 삶과 수감생활을 적나라하게 회고하는 등 故 이주일 씨가 폐암 말기에 금연홍보대사로 활동하듯이 마약퇴치를 위해 공익활동을 많이하였고, 치료에서도 좋은 경과를 보이며 정상적인 행보를 보여준 덕분에 그동안 현진영을 마약 연예인으로 낙인 찍고 있던 대중들의 부정적 인식도 긍정적으로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5집 준비 시기에 "재즈힙합"이란 새로운 쟝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중저음대 음색'과 '소리의 통칼라'를 바꾸기 위한 울림통을 키우기 위해 137kg으로 '살을 찌웠다'고 합니다.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는 찌고나니 저음이 좋아져서 일부러 놔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음악 작업을 하면서 엄청나게 찌웠다 뺐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건강을 걱정해서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후 2002년 4집 "21C New Dance Jin Young Vol. 4"을 발표하였고, 2006년 5집 "Street Jazz In My Soul"을 발표하였다.

2011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앨범을 냈습니다. 2016년애는 디지털싱글 "무념무상"이라는 재즈힙합 음원을 냈습니다. 이후 "무념무상"은 발표한지 일주일만에 멜론 재즈부분 Top100에서 6주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17년에는 디지털싱글 "내맘대로"라는 재즈힙합 음원을 냈다. 2018년부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 목요일 방송에서 '현진영 데이' 코너를 맡으며,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가수 현진영의 인스타그램 주소는 @hyun_jinyoun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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