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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에 위치한 공국. 서유럽으로도 분류되고 남유럽으로도 분류된다. 10세기 제노바의 명문가인 그리말디(Grimaldi) 가문이 건설한 대프랑스 무역기지에서 출발했다.

크기가 적당히 작은 나라도 아니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데다 콩라인 딱히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것도 아니어서 유럽 이외의 지역들, 특히 동양권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나라 자체의 인지도보다는 프랑스 축구리그 리그 1의 축구클럽 AS 모나코 FC의 인지도가 더 높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알다시피 바티칸 시국. UN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작다. 인구도 3만 3천명 정도로 적다. 그러나 땅이 워낙 작다 보니 땅에 비해서는 엄청난 인구다. 그래서 인구 밀도는 세계 2위.

 

모나코 공(公, Prince)이 다스리는 입헌군주제, 의원 국가이다. 국민의회(Conseil National)는 총 24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4명 중 16명은 지역구에서, 8명은 정당득표에 따른 비례대표제를 활용하여 선출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비 '그레이스 켈리'로도 유명하다. 아카데미상 수상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1954년 화보 촬영차 모나코에 왔다가 레니에 3세 공의 작업에 걸린 것. 레니에 3세는 12캐럿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등 지속적인 구애를 펼쳐 1956년에 결혼했다. 이 덕분인지 이후 모나코에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

 

 

UEFA가 주최하는 클럽간 대항전(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의 조추첨식을 하며, 2012년까지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UEFA 슈퍼컵이 열리기도 했다. 루이 2세 스타디움은 박주영이 뛰었던 AS 모나코 FC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FIFA나 UEFA 회원국은 아니다. 그래서 AS 모나코 FC도 프랑스리그인 르 상피오나 리그 앙에 나온다. 더불어 국가 대표팀이 아예 없어 유로컵이나 월드컵 예선에서도 못 본다. 인구도 3만명 정도로 적지만, 국가 면적 때문에 국가별 인구밀도 수치에서는 압도적으로 1위다. 어쨌든 2000년대 들어서야 일단 축구협회가 창설되었다. 모나코는 세계 제 1의 장수 국가다. 2017년 CIA the Worldfactbook에 따르면 모나코인의 평균 수명은 무려 89.4세라고 한다. 2위 일본보다 4년 정도 더 길다.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85.6세이고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무려 93.4세나 된다. 실로 경이적이라 할 정도로 장수하는 셈이다.

모로코와 이름은 비슷해서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지만, 대륙부터 전혀 다른 나라이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북서쪽 끝에 있으며 모나코와는 국토부터 36만 배 가량 차이 난다. 하지만 둘 다 지중해에 접해 있다는 공통점은 있다.

 

 

세계에서 제일 인구 대비 경찰이 많은 나라다. 2011년 기준 인구 36,371명 중 519명이 경찰(인구 70명당 1명의 경찰.) 군대도 있긴 있는데, 겨우 255명이라 장교는 프랑스에서 빌려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바깥에서는 유대인 인구비중이 제일 높은 나라이다. 인구통계에 따르면 2.9%의 인구가 유대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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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국가. 해양 무역이 상대적으로 활발했을 시기에는 위세가 상당한 국가 중 하나였다.

수도는 리스본(Lisbon). 리스본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2,927,000명이다. 리스본은 영어식 이름이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즈보아(Lisboa)라고 한다. 그 밖에 포르투(Porto), 브라가(Braga), 코임브라(Coimbra), 파루(Faro) 같은 주요 도시들이 있다. '포르투는 일하고, 코임브라는 공부하고, 브라가는 기도하고, 리스본에서 즐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10,291,000명이다. 비슷한 인구 규모의 유럽 국가는 벨기에, 스웨덴, 그리스, 체코, 헝가리 등이 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은데 인구는 대한민국의 1/5 정도 된다. 한국으로부터 가장 이동 거리가 긴 유럽 국가들 중 하나다.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독일보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한국에서 이동 거리가 더 멀다. 직항편이 없으므로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한국 관광객은 주로 스페인과 연계해서 리스본과 주변 지역, 포르투, 몇 개의 관광 도시와 남부 해변 정도를 단기로 찾는 편이지만 유럽 내에서는 이외에도 휴양지인 마데이라 제도, 해안선을 따라 걷는 코스인 호따 비센치나(Rota Vicentina)가 아주 유명하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하면서 제국주의의 서막을 열기도 했다. 당시 교황의 중재 아래 스페인과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해서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해양 강대국이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 등이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포르투갈은 상당히 변동이 심한 인구 변화를 보였던 국가다. 1965년 정도까지는 인구가 느리게 증가하다가 갑자기 인구가 다시 줄어들어서 정체해 있었고 서유럽의 다른 국가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1975년부터 갑자기 인구가 증가했다. 다시 1985년부터는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체했다가 다시 느리게 증가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다시 줄어들고 있어서 포르투갈은 심지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변동이 불안정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도 강한 편이고 애향심도 상당히 강하다고 여겨진다.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도 유색 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국가 중 하나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돌아 오지 않거나 못해서 조금 귀해서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자들이 남자 흑인 노예와 결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어 왔고 심지어 귀족 가문의 딸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자유 진영 국가들 중에서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 개시가 가장 늦었던 국가기도 하다.(1980년 3월 7일)[11] 공영 방송사는 RTP이다. 한국보다 9개월 정도 빨랐다. 참고로 공산권에서는 루마니아가 1983년에 시작했다. 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해율이 30%대에 불과했을 정도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그리고 소수 언어로 미란다어라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는 천만명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만~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 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와 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고 2010년~2011년 시즌에는 모처럼 유로파 리그에 4강에 3팀이나 진출한 덕분에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팀끼리 맞붙게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미국, 영국, 독일 등 다른 나토 국가들과 군사적, 외교적인 협력을 한다. 더불어 영연방보다는 못하지만 포르투갈어 상호 교류를 하면서 과거 식민지 국가들인 모잠비크, 앙골라, 기니비사우, 상투메 프린시페, 동티모르와 축구 대회를 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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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다양하고 풍부한 지리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북부 산악지대는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10대 산 중 8개가 분포해있다. 비옥하고 습한 남부는 매우 도시화되어 있다. 네팔 인구의 약 87%는 힌두교를 믿는다. 이는 인도보다 높은 수치이다. 불교는 티베트 불교를 중심으로 하며 다수의 불교 사원이 있으며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가 네팔에 있다.

네팔은 길이 650 km, 너비는 200 km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이며, 전체 면적은 147,181 km²로 세계적으로는 94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자치구, 서쪽으로는 인도의 우타라칸드 주, 남쪽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와 비하르 주, 동쪽으로는 시킴 주와 웨스트벵골 주에 접하는 내륙국이다. 국경 길이는 총 2926 km, 그중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은 1236 km, 인도와의 국경 1690km에 달한다.

 

정치는 민주공화정이며 대통령은 비디아 반다리(2015년 10월 취임) 이다. 네팔의 대통령직은 명목상의 직책이며, 실질적인 정부 수반은 총리이다. 현 총리는 2016년 중순에 취임한 푸슈파 카말 다할 총리이다. 의회는 상, 하원 양원제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주요 정당은 네팔 의회당, 네팔 공산당이 있다.

네팔은 세계적인 주요 육로, 항로, 해로 교통으로부터는 고립되어 있으나 국내에서는 항공 교통의 사정이 비교적 나은 편이다. 48개의 공항이 있으며 그중 10개는 포장된 활주로가 있다. 항공편이 자주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의 교통량을 보이고 있다. 이 나라의 3분의2를 차지하며, 언덕과 산이 많은 북부 지역에서는 도로나 다른 기반시설을 만드는 것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네팔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의존하고, 사탕수수와 담배가 주요 수출품이다. 하지만 험한 경사 때문에 생산력이 매우 열악하다.

 

 

2016년에는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해 발표하는 세계기아지수(GHI)에서 100점 만점 중 21.9점을 기록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의 기아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는 총 118개국 개발도상국 중 72위의 기록으로 여전히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네팔어가 공용어로 인구의 약 90%가 네팔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다양한 부족마다 부족 내에서는 부족어로 대화한다. 각종 미디어의 영향으로 많은 수가 어린 시절부터 힌디어를 듣고 이해하며 인도 국경 도시에서는 특히 힌디어가 많이 사용된다. 종카어도 사용된다. 영어는 700만 명 정도가 제2언어로 사용한다. 영어로 교육하는 사립 교육 기관이 많아 젊은층의 경우 영어가 매우 능숙하다.

 

네팔은 힌두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던 유일한 국가로서 인도와 함께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이다. 신헌법이 2008년 6월 15일부터 발효되어 국교를 폐지했다. 현재 전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있으며 그 밖의 소수종교로는 불교가 있다. 이슬람교(4%), 기독교(1%)도 공존한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는 2500여 개의 사원과 신전이 있다. 1년에 50여 개의 힌두교 관련 축제도 개최하는 등 종교성이 상당한 나라이다.

 

교육을 받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며, 문맹률이 높다. 기본 학제는 '10+2 시스템'으로 초등학교 7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과정으로 되어 있다. 유명 대학은 카트만두에 국립 Tribhuvan 대학(전국 각지에 100여개 캠퍼스 운영)이 있으며 총 학생 수는 약 20만 명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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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동북 지역 벵골 만 연안에 자리잡은 국가이다. 수도는 다카(Dhaka). 지도를 얼핏 보면 거대한 인도 반도의 동쪽 겨드랑이에 위치했으므로, 방글라데시의 서쪽은 인도이고 동쪽은 인도차이나일 듯이 느껴지지만, 국경선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으로 미얀마와 접하는 국경은 매우 협소하다.

방글라데시가 북쪽과 동쪽으로 접하는 인도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유지해온 데다 인도 측 입장에서도 개발이 잘 안 되는 낙후 지역이기에 경제 교류 상 무의미하고, 남동쪽 끝에서 접하는 미얀마도 쇄국 정책이 길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수십년간 인접국과의 교류가 무의미했다고 한다.

 

 

국가 구조가 우루과이와 매우 흡사하다. 둘 다 거대한 나라(인도, 브라질)의 한 주 였다가 떨어져 나온 독립국이며 공교롭게도 둘 다 그 나라의 끝자락(방글라데시는 동쪽, 우루과이는 남쪽)에 위치해 있다가 독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토 면적은 144,000km2로 그다지 큰 편은 못 되지만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1억 6,664만 명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인구밀도는 2015년 기준 1,237명/km2이며 이는 한국의 울산광역시, 경기도와 비슷한 정도. 이는 방글라데시 국토 전체가 삼각주이며, 따라서 인구 부양력이 높은 벼농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국토 정중앙이 수많은 강으로 나뉘어져 있다.

 

 

민족 측면에서는 전 국민의 98%가 벵골족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 오긴 했지만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다른 민족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영토 자체가 다우지(비가 많이 오는 곳)에 자리잡은 데다 과도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 훼손까지 겹쳐져서 엄청난 대홍수를 겪는 국가가 되었다. 연평균 1.6건이 발생하는 사이클론과 이 대홍수 때문에 하구의 비옥한 삼각지가 다 쓸려나가서 농업에도 큰 손실이 났다. 실제로 사이클론을 비롯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발생한 최악의 인명피해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1970년 11월 사이클론 '볼라'가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 지역을 강타했는데, 이 때 발생한 사망자 및 실종자는 약 50만명에 달했다.

 

100년 전에는 코끼리나 코뿔소, 물소등 큰 짐승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멸종하고 중소형 동물만 남아 있다. 가장 큰 포식자인 호랑이도 50~75kg 수준으로 작지만 맹수라서 사람을 해치는 일도 생긴다. 그 밖에 사슴이나 멧돼지, 원숭이 등 포유류가 주류고 황새등 민물 조류도 서식한다. 습지 주변에는 악어도 있다.

 

전체적으로 직소퍼즐 한 조각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세로로 약간 긴 직사각형에서 북쪽으로 작게 튀어 나간 부분이 있고, 동쪽에는 약간 파먹힌 부분이 있는 모양. 남쪽엔 벵골만에 접해 있고 여기를 통해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경의 대부분이 인도와 접해 있지만 동남쪽에는 미얀마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직접 국경을 접하지 않지만 가까운 주변국으로는 네팔, 부탄, 중국 등이 있다.

 

성매매가 2000년대 초반 이후로 합법화 되어 만 18세 이상의 여자들은 성매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성매매의 현실 미성년자들의 성매매가 빈번하며 20대 초반만 되도 베테랑 소리를 들을정도로 난잡하다.... 주로 다울랏디아, 라즈바리, 탄가일, 머밍싱등이 유명하다.

 

축구의 인기가 많은 덕택에 축구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축구를 즐기는 사람만 많지 선수 육성시스템이 영 좋지 않기 때문에 인도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많은 인적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국 축구 실력은 세계적인 약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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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아래의 말레이반도에서 맨 끝의 작은 섬인 싱가포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말레이시아와, 여기서 아예 남중국해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보르네오 섬의 북부 지역, 그 중 작은 부분인 브루나이를 제외한 북부 보르네오 거의 전 지역을 국토로 두고 있다. 즉, 국토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비연속국인 셈. 게다가 중간 해역 상에는 인도네시아령인 리아우 섬까지 끼어 있다. 인도네시아와는 말라카 해협을 두고 해상 경계선을 이루며 보르네오 섬에서는 다시 육상 경계선을 이룬다.

대부분의 지역이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열대우림기후에 속하며, 적도의 바로 윗 부분인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우기와 건기의 구분히 다소 모호하나, 현지인들은 건기를 따지는 편이다. 그렇지만 결국 건기라고 비가 아예 안 오는 것이 아니고 우기에 심하면 하루 3번 정도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 건기에는 하루 한 번 정도로 줄어드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현지에서 KLIA로 흔히 줄여 부르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말레이시아의 관문 공항이다. 이 공항을 허브로 사용하는 말레이시아 항공과 에어아시아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큰 규모의 항공사들이다.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넓은 국토 덕분에 국내선 항공도 매우 활발하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로 크게 나뉜다. 말레이계는 국교인 이슬람을 믿고, 중국계는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무신론, 인도계는 힌두교를 믿는다. 중국계 기독교인들은 성공회와 가톨릭이 대부분이며, 특히 영어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젊은 여자들의 경우 아그네스나 베로니카, 클라라, 이본느 등의 세례명 이름을 메인으로 많이들 쓰는데 중국계 젊은 층의 종교 성향이 기독교와 무종교/무신론 둘 중 하나로 양분되어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젊은 층이 많아져서이다.

인구의 50%인 말레이인은 전원 이슬람교를 믿고 중국인은 50%는 불교, 20%는 각각 도교와 기독교, 10%는 무신론 내진 무종교이며, 타밀인은 거의 힌두교를 믿고, 일부 남인도 출신 가톨릭과 시리아 정교회 신자가 있다. 기독교의 경우 가톨릭은 대개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동부 사바 지역 원주민들이나 말라카의 고아 출신 타밀인들이 믿지만 비중은 소수이며 사람 숫자로는 20%로 상당수인 중국계가 제일 그리스도인이 많다. 젊은 세대의 중국인은 사실상 무신론자와 기독교인 둘 중에 하나이다. 종교만 불교로 표기한 사실 상 무신론자들까지 따지면 무신론자는 50%까지 는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치안이 괜찮은 수준이다. 따라서 필리핀처럼 총격살인 등 강력범죄는 드물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해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치안도 양호한 편이나 대도시인만큼 강력 범죄가 드문 대신 소매치기, 오토바이 날치기 등 좀도둑이 상당히 많다. 쿠알라룸푸르의 명동격인 부킷빈탕에 날치기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을 정도다. 차도 반대쪽으로 크로스백을 단단히 매고, 목걸이 등 장신구도 되도록이면 빼고 수수한 차림으로 다니자. 말레이시아의 도시에는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도 중국계가 더 많이 살고 있어서 복장을 수수하게 하고 다니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구분도 잘 안 된다.

단기 관광에는 거의 문제가 없지만, 취업, 유학 등 장기체류 시에 이민국이 법적 제약을 심하게 가한다. 사소한 이유로도 비자 승인을 거부하고 외국인의 비자를 손쉽게 취소시키기도 한다. 여기에 외국인이 항의하면 구속될 수도 있다.

외국인의 말레이시아 취업 역시 현지 고용법상 어렵다. 현지 고용법은 가능한 한 외국인 취업자를 몰아내 자국민 취업을 증가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외국인을 고용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므로 회사들 역시 채용공고 ('구의직원')에서부터 자국민을 우대한다. 자국민을 고용할 수 없을 때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는 축구가 제일 인기가 많다. 므르데카컵으로 1970년대에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적도 있다. 축구 열기는 지금도 여전하며, 말레이시아 수퍼 리그(1989년부터 M 리그라는 명칭을 썼다가 2004년부터 수퍼 리그로 바꾸고 2부리그는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꿨다.)의 Selangor FA처럼 인기있는 팀은 평균관중이 4만이 넘는다.

 

-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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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레이시아의 조호르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북쪽은 조호르-싱가포르 코즈웨이를 통해, 서쪽은 투아스 제2 연결점에 연결되어 있다. 주롱 섬, 풀라우 트콩, 풀라우 우빈, 센토사가 주요 섬이며, 가장 높은 산은 부킷 티마 힐로 해발 166미터이다. 본섬의 중심에 위치한 싱가포르 강의 남쪽이 원래 도시의 발당이었으며 현재는 다운타운 코어로 불린다. 이전에 그외 지역은 농장과 열대우림이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도시의 확장과 함께 거주와 쇼핑 그리고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싱가포르는 계속적인 간척 사업으로 1960년대에는 581.5km2의 면적에서 현재는 719.1km2로 확장되었다. 이는 서울(605.25km2)보다 약간 큰 면적이다. 2030년까지 100km2를 더 확장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은 섬이 본섬과 연결되었는데, 주롱 섬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기후는 연중 고르게 아침 최저 23℃에서 낮 최고 32℃를 보인다. 연평균 강수량은 2343.1 mm 정도이며 11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강수량이 많은 편이다.

싱가포르의 경제정책은 국가에서 통제하는 권위주의식 자본주의이다. 200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1770억$로 43위의 해당하는 경제규모이며, 1인당 GDP는 37000$가 넘는 부유한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 기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출입 무역에 의존하여 발달하여 왔다. 제조업도 발전한 편인데, 2005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의 28%가 제조업으로부터 나왔다. 주요 생산품은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이다.

 

싱가포르는 관광산업으로도 유명한데, 2013년에는 1 500만 명의 관광객이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5년에는 관광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도박을 합법화시켰으며, 마리나 사우스와 센토사 섬에 새로운 테마파크를 세우는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 음식 축제, 칭게이 축제 등의 관광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국제 교통 허브로, 많은 항공 및 해운 노선이 이곳을 지난다. 차량은 말레이시아와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을 한다. 홍콩처럼 땅이 좁아서 자동차 소유자에게 매우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있으며, 자동차 구입 비용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아 인구는 500만명 가까이 되지만 자동차는 65만대가 등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나 일본과는 항공기로 연결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미국처럼 이주민이 건설한 이민국가이면서,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족관이 유지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시부모나 나이 드신 분을 모시고 살거나, 실직하여 생계를 잇기 힘든 남자 형제를 도와주고 고아가 된 조카를 입양하는 것이 전통적 가치관으로 여겨진다.

1990년 이래로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를 동과 서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진정한 코스모폴리턴의 관문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는 2002년 10월 12일 문을 연 에스플라네이드 극장이다.
연극, 무용, 음악 그리고 비주얼 아트등으로 구성된 예술축제는 국립예술위원회가 매년 개최한다.

 

공용어로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가 있으나, 사실상 영어가 유일한 공용어 역할을 한다. 말레이시아와 긴 역사 때문에 말레이어는 국민어로 지정되어있다.

 

2000년부터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이 되었으며, 문맹률은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편인 5% 미만이다. 1997년 TIMSS자료에서는 싱가포르가 수학과 과학에서 일본(수학 및 과학 3위), 한국(수학 2위, 과학 4위), 미국(수학 28위, 과학 17위)을 제치고 모두 1위를 차지한 바가 있다(1995, 1999, 2003년에 1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는 여러 민족이 같이 사는 나라인 만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 등의 영향을 받아 섞인 독특한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
- 칠리 크랩: 매운 토마토 소스의 게 요리.
- 블랙페퍼 크랩: 칠리 크랩과 함께 유명한 후추 소스로 만든 게 요리.
- 블랙소스 프론: 검은 두반장 소스의 대하 요리.
- 삼발 머슬: 삼발소스를 얹어 쪄낸 홍합 요리.
- 오징어: 바삭하게 튀긴 작은 오징어 요리. 주로 맥주 안주로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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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 대한 공식 호칭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데, 이는 현 미얀마 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영국 등 꽤 많은 국가가 지금도 주야장천 버마(Burma)라고 부르며, BBC World News는 버마라고 부른다. 한편, 미국 CNN International은 미얀마(Myanmar)라고 부른다.

과거의 명칭이었던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의미였다.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미얀마라는 단어의 어원이 결국 버마라서 다민족성을 표방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1989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할 때 그에 관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군부에서 지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군부의 독단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지 여사는 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약 677,000㎢(남한의 약6.7배)이며 인구는 약 5,512만 명(2017). 미얀마인의 종족 구성은 버마족이 약 68%, 샨족이 9%, 카렌족이 7%이며 기타 소수 민족도 16%에 이른다(2008). 나라 크기에 비해 민족 구성이 대단히 다양하며 무려 135개나 되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보다 더 많다.) 공용어는 버마어이지만, 소수민족들의 언어들도 많이 쓰이는데 그 수가 242개나 된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대영제국은 미얀마를 식민통치하는 와중에 농지 개간 및 도시 인프라 확대 차원에서 많은 인도계 주민들을 미얀마에 정착시켰다. 다른 대영제국 식민지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주로 타밀나두 지방의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이 많았던 반면,[3] 미얀마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유달리 브라흐민과 크샤트리야 등 상위 카스트 출신이 많았다. 대영제국에서 버마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힌두교도 소수민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극심한대 미얀마는 특히 심각하게 부각되는 편이다. 버마족과 소수 민족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 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 간 분열 정책이다. 미얀마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버마족이 독립 이후 미얀마 사회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보복이 자행된 것이다. 이에 각지의 여러 민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해 무기를 집어 들었고 곧바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소수 민족 반군들은 미얀마 정부에게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1930~40년대에는 아시아 최대의 쌀 생산국이었으며, 1960년대까지도 이런 위치에 있었다. 쌀 외에 티크(목재)도 수출하지만 군부 독재의 여파로 서방 국가들이 가하는 경제 제재 크리로 수출량은 매우 저조하다. 이는 쌀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1988년 이후 수출길이 모두 끊어져 ASEAN 내부에서나 근근히 교역이 이뤄지는 형편. 의외로 2016년 기준 최대의 대두 생산국이다.

 

놀랍게도 미얀마는 아프가니스탄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양의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고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심지어는 불교사원에서 엄청난 규모의 마약이 발견 및 적발되어서 미얀마 정부도 골치를 겪고 있지만, 마약근절 상황은 아직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공용어는 미얀마어로 지정되어 있다. 미얀마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SOV 어순을 띄고 있는 언어다. 미얀마도 다민족국가라서 카렌어 등의 각 소수민족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예전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을 비롯하여 여러 종교가 있지만, 상좌부 불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미얀마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며, 특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야 할 정도다. 전체인구 중 93 ~ 95% 이상이 불교 신자이므로 절대다수이다.

 

미얀마인들은 유난히 숫자 9를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미얀마 국영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는 999 kHz에 할당되어 있으며, 1990년대 이전에는 45짯, 90짯 지폐가 통용되기도 했다. 마이크로 버스로 합승 택시 영업을 하는 운전 기사들도 승객이 9명이 되면 자리가 남아도 출발하며 출발 시간이 되어도 9명이 안 되면 9에서 모자라는 수만큼의 가축, 심지어 돌이라도 싣고 출발한다.

 

2019년 6월 18일에 미얀마의 한 여성의사가 비키니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린 것으로 해고당하자 논란이 일어났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얀마내에선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고 프로 리그를 운영 중이다.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 축구 강호였으나 현재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최약체로 전락해버렸다.그냥 세계적으로 아예 최약체 수준이다.

외교부의 미얀마 여행경보 지도. 방글라데시 및 중국, 라오스, 태국 접경 지역은 철수권고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은 여행유의 지역이다. 치안 상황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받았던 특성상 개발도상국임에도 상당히 좋은 편으로, 경범죄 발생률이 낮다. 미얀마 사람들도 불심으로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나라답게 대체로는 온화하고 친절한 편이다. 그래도 엄연히 여행 유의 국가이며 국경 지대 등 일부 지역들은 철수 권고 지역으로 발령되어 있다. 간혹 불교와 이슬람교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범죄 발생률이 낮은 건 의외는 아니라 곳곳에 사복 경찰이 깔려있다는 뜻이다. 아니 대놓고 쪼리 신고 돌아다니는 제복 경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미얀마의 경우 여행 경보가 발령된 이유는 다름 아닌 시위 때문인데,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시위로 인해 여행객들이 휘말리기 때문에 저런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사복 경찰이 깔려 있는 것도 치안도 치안이지만 곳곳에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강하다. 다만 중국-태국 접경 지역은 위험하고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집트가 한때 그러한 시위로 인하여 국가적 위기에 빠진 것을 볼 때 내려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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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입헌군주국. 정식 국명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수도는 프놈펜. 공용어는 크메르어다. 크메르어는 다른 동남아 언어와 달리 성조가 없다. 소수지만 중국어, 태국어, 프랑스어, 영어도 사용된다. 교육과정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영어가 대중적이다.

현재 인구는 약 1570만 명. 유아사망률이 높고, 에이즈에 의한 사망률도 높은 편이다. 한국에선 캄보디아 하면 앙코르 와트와 발 마사지를 생각할 것이다. 킬링필드라는 역사상 최악의 사건도 유명.

 

 

이 나라의 언어는 '크메르어(khmêr)', 민족은 '크메르인'으로 부른다. 이는 영어 표기이고 로마자 표기 시 ae 발음을 ê라고 쓰기 때문에 현지 발음으로는 '크마에'라고 해서 한글표기와 실제 발음간에 좀 괴리감이 있다. 캄보디아에는 화교 출신이 아주 많아 수도인 프놈펜에는 중국어가 거의 통용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1999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내전이 끝났다. 1993년에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국왕이 프놈펜의 왕궁에 머무르긴 하지만, 일본이나 영국처럼 실권이 없으며, 총리가 정치를 대부분 맡는다. 그러나 아직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서 총리도 중대사, 특히 외교문제를 처리할 때는 국왕 눈치를 조금은 보는 듯하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국민 대다수가 상좌부 불교를 믿는다. 2015년에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건립되었다.

인도차이나에서 국토면적이 가장 작지만, 그 면적이 남한의 1.8배쯤 되는 관계로 국토가 그렇게 좁진 않다. 전반적으로 평지가 많은 편이고 국경지대로 가면 산지가 조금 있다. 산맥다운 산맥으로는 서쪽에 끄라바인(Krâvânh) 산맥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캄보디아 최고봉으로 해발고도 약 1,800 m인 프놈 우랄이 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태국-캄보디아 국경이 아주 잘 보이는데, 태국 쪽은 전부 개간된 농지인 반면 캄보디아 쪽은 전부 숲이라 국경이 잘 보인다.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베트남도 전부 논인 베트남 남부와 캄보디아의 사바나가 두드러져 국경이 잘 보이는 편. 실제로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과 달리 아직 자연이 그런대로 보존되었다. 국토 중서부에 톤레삽 호수가 있는데, 건기에도 큰 호수이지만 우기에는 심하게는 10배 가량 커지며, 국토의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메콩강의 수량조절역할을 한다.

 

 

기후는 강수량이 많지만 우기에 집중되어 있다. 날씨는 건기엔 건조하며 덥고 우기엔 습하며 더운 열대기후가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연교차는 좀 있는 편으로 1월 즈음엔 25℃ 정도로 따뜻한 날씨를 띄지만 3월부터 더워져 40℃ 가까이 올라가고 5월부턴 비가 차츰 오기 시작하는데 만약 우기가 늦게 시작하면 관개시설이 부실한 연유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우기는 9-10월쯤 정점을 찍고 난 후부터 기온도 내려가고 비도 덜 내린다.

 

앙코르와트로 대표되는 크메르 제국을 세웠고 참파와 대립하는 강대국이었으나 몰락한 후에는 베트남과 태국에 시달리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립 후 시아누크 왕조의 독재를 론 놀이 뒤엎고 크메르 공화국을 세웠으나 크메르 루주에 의해 무너져 킬링필드를 겪었고, 베트남의 괴뢰정부를 겪고 난 뒤 투표를 통해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인지도가 낮지만 크메르 루즈 정권 이전엔 의외로 영화 산업이 발달했던 시기가 있었다. 1년에 300편이나 만들어질 정도였다고. 비록 내수 성향이 강했지만 동남아시아 쪽에서는 제법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다만 크메르 루즈 도래 이후론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망해버렸다. 독재 종식 후 리티 판이라는 감독이 1990년대에 등장해 국제적 인지도를 얻었다. 그가 1993년에 만든 라이스 피플은 캄보디아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정도로 성취를 거뒀으나 산업이 크질 못해 아직도 침체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국처럼 공포 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나라다.

 

캄보디아 최대의 인기스포츠는 의외로 배구이다. 공터만 있으면 기둥 세우고 네트 대충 걸치고 배구를 즐기는 캄보디아인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력은 영 좋지 않은 편으로 동남아 배구 최강인 태국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도 압도하지 못한다. 축구는 그 다음으로 인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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